기억력 개복치의 황금 여정
어디서부터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로다… 일단 앞서 말하자면 나는 황금(7.0~7.3)이 극호였다. 그냥…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지 나는 남들이 지루했다는 왕위계승전도 너무너무 재밌게 한 사람이라서… 게다가 라마티의 성장 서사를 보면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라 그 애가 그렇게 분투하고 싸우다가 결국에는 정말 의젓한 한 나라의 왕으로 성장한다는 게… 물론 왕정인제 어떻게 남의 나라에 군대가 같은 생각이 아예 안 든 건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성장 서사 전부를 붐따 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황금의 유산은 내내 죽음과 앎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다고 생각함. 며칠 전에 트위터에서 황금에서는 주제 의식이 불분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전적으로 반대한다. 칠흑이나 효월만큼이나 명징한 주제부를 가지고 있으나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상당히 은유적이고 간접적이라서 단숨에 알기 어려울 뿐이라고 봅니다. 사실 창작물을 바라보면서 이 물체의 기의가 뭐고 이 기표는 무엇을 상징하고… 이러면서 보는 사람들은 드물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기는 하는데요(뭐 트위터야 그런 사람들이 천지삐까리지만 대체로 큰 폭에서 봤을 떄… 아닐 시 님이 맞음), 나한테 황금은 표면만 겉핥기해도 충분히 즐겁지만 그 내부를 파고들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지는 그런 종류의 스토리였음.
최근…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은데, 알고 지내던 지인이 타계하셨다. 사실 그래서 7.0을 새로이 밀면 또 다른 감상을 가지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함(하지만 워낙 긴 여정이라 아직은 완주할 자신이 없어요). 7.3을 보면서 거듭 언급되는 죽음과 두려움, 회피와 삶 같은 이야기들을 보면서 좀 울었다. 한동안, 정말 한동안 그런 비슷한 생각들을 너무 많이 했었음. 사람은 너무 단숨에 죽는다. 그걸 깨닫는 순간 삶이라는 건 지나치게 덧없게 느껴진다. 두려움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걸 모사한 공허함이 지속되었는데(다행스럽게도 나는 상담을 받는 중이었던지라 토로하며 비교적 빠르게 벗어난 것 같음) 이 지점을 황금의 유산이, 특히 7.3이 콕 집어서 말해준 것 같았다. 죽지 않는 인물들의 세계를 황금향이라고 일컫는 것도 좋았다. 정말 눈부시게 찬란했던 황금향에서 불이 다 꺼진 황폐한 잔해들을 지나, 온전히 자연스러운 황금으로 돌아가는 그 여정이 너무나도 인상 깊었다.
사실 황금이라는 소재는 창작물에서 유구하게 인간 욕심과 그에 얽히는 덧없음을 상징하는데(일례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호빗 속 드워프왕이 아닐까 싶다), 이것을 죽음이 가지는 의미와 훌륭하게 얽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죽음을 초월한 곳이었던 황금향, 언로스트 월드는 그 자체로 인간의 욕심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듯 본편에서 은은히 깔려 있던 죽음에의 비유는 칼릭스라는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수면 위로 드러난다. 사실 나도 개인적인 시선에서는 칼릭스가 그다지 설득력 있는 빌런으로 보지는 않지만, 그와는 별개로 칼릭스가 가진 사상은 그를 작품을 굴러가게 하는 동력으로는 충분하다고 느낀다(하지만 동력일 뿐 빌런, 그것도 빛의 전사의 대적자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생각함). > 이건 생각이 좀 바뀌긴 했네요 일부러 그렇게 조성된 것 같음 칼릭스는 죽기 싫은 어린아이에서 탈피하지 못한 존재니까 (25.12.06)
칼릭스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존재다. 그는 인간 종의 진화니 뭐니 하지만 가장 단순하게 보자면 그냥 본인이 죽기 싫은 것이다. 숭고한 목적(인류의 진화)으로 겉을 포장했지만 사실 그는 죽음이 불합리하다고 여기며, 7.3 스토리 내내 언급된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사상은 그의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두는데, 태생적으로 몸이 약했다는 서술로 보아 우리는 그가 어린 시절 내내 죽음에의 공포에 시달렸다는 상상을 할 수 있다. 즉, 칼릭스는 영원인으로 사백 년을 살았으나 아직도 육체의 죽음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힌 어린애라는 것이다(이런 어린 면모는 부수라고 했지 방어한다고는 안 했어 등의 유치한 대사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칼릭스는 결국 7.3에 등장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든 인물(모브라고 불리는 그들)의 대변자다.
여기서 좋았던 점. 솔루션 나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직접 설득하고자 한 건 빛의 전사 일행이 아니다. 빛의 전사는 황금의 유산 본편&외전 내내 상당히 방임적인 태도를 취했는데(사실 이 지점에서 호불호가 많이 갈렸다고 보이기는 하다. 나는 극호), 이는 스토리에서 일개 개인들이 나서는 때에도 마찬가지다. 황금의 유산 내내 빛의 전사는 유력한 주인공이 아니다. 글로 비유하자면 이것은 일인칭 시점이 아닌, 일인칭 관찰자 시점인 것이다. 빛의 전사는 투랄 대륙과 알렉산드리아에 이방인으로 존재하며, 그렇기에 스토리 중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밀접하게 엮이면서도 그 대상자가 될 수는 없고, 대상자가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결국 스토리는 진행해야 하며, 누군가는 자신을 가로막는 시련을 타파해야 한다. 빛의 전사가 이방인이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도 없을 때, 시련을 극복하는 건 누구의 몫인가? 7.3은 결국 그 대상자가 모브라고 비추며, 동시에 우리(빛의 전사 폴리곤이 아닌, 그것을 다루는 우리라는 개인), 즉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현실에서 우리는 빛의 전사가 아니다. 세상을 몇 번씩 구하고, 죽음에서 살아 돌아오는 초월자가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그들 세계의 모브, 평범한 사람에 가깝다. 그러나 이방인인 빛의 전사와는 달리, 우리는 분명히 그 세상에서 살아 숨 쉬고, 그곳은 우리가 구성하는 세계이며, 그렇기에 이 죽음의 공포라는 거대한 시련에 맞서고 이겨내야 할 대상도 우리가 되는 것이다. 여기는 우리의 세계니까.
너무 현실감 있는 소재를 선택해 놓고 해결책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읽은 적 있다. 동의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 적정 수준의 이상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상은 사람을 나아가게 한다. 사람이 무너지지 않도록 받치고, 결국 상황을 타파할 힘을 부여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것이 스토리의 맹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는 창작물에서라도 이상적인 해결책을 내놓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창작물에서 본 이상을 일부라도 실현하기 위해 사람들이 노력한다면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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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비 @G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