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곧내.
되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됐다.
기
시작은 평범했다. 일 년 내내 버닝 중인 자컾이 마침 일주년을 앞에 두고 있었다. (궁금하시다면 이쪽으로 : URL일주년인 만큼 좀 더 특별한 굿즈를 만들고 싶었다… 회지는 질리도록 만들었고(그러나 이번에도 또 만들었음) 앤오한테서 받은 것도 상당해서 뭘 만들어야 제대로 원수를 갚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이 사람이 향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다. 마침 캐릭터 향수라는 게 존재하니 나도 도전해볼까?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장애물이 있었음. 첫째. 나는 지방러다. 서울 한번 올라가려면 아주 큰… 큰 결심을 해야 한다. 게다가 친구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나의 서울메이트 지인한테 연락했더니 예정해두었던 시기랑 지인 일정이 미묘하게 어긋났다. 하는 수 없이 좀 더 기다려야지, 하는데 아뿔싸. 그렇다. 설이 있었다. 엉엉 울면서 외가 친가 돌고 돌아오고 나서 게임하면서 생각했다. 이제는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없었다.
지인한테 연락한 게 아마 그맘때쯤이었을 것이다. 숙성 시간도 있으니 설 끝나는 금요일에 갈까?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체력이 못 받쳐줄 것 같았다. 게다가 금요일이면… 기차가 있을까 싶기도 했고. 그래서 고민하다가 2월 첫째주를 제안했다. 지인이 일이 있댔다. 꼼짝 없이 둘째 주에 가게 됐다. 참고로 일주년은 둘째주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그러니까 진짜 막차의 막차를 탄 셈.
가기로 해놓고 업체를 선정했다. 마계공방 말고도 다른 곳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아무래도 앤오한테 일주년 기념 선물로 주는 거니까 패키지가 예뻤으면 좋겠고, 마계공방은 내가 아기 오타쿠일 때부터 존재해 왔던… 어떤 장소였다. 사실 동반인이 있어서 걱정스럽긴 했는데 QnA 읽어보니까 한둘쯤은 괜찮대서 마음 놓았다.
그러나.
01. 날짜도 업체도 기차도 전부 준비했다. 이때 남은 관문은? 답 : 공방 선착순 폼켓팅
승
그렇다. 날짜도 업체도 하다못해 기차까지 예매해둔 상태로 내가 하지 않은 것은 가장 중요한 공방 폼켓팅이었다.개쫄았다. 진짜 개쫄았다. 마계공방은 매주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폼이 열린다. 그걸로 예약해야지만 갈 수 있는 것이다. 말했다시피 내게는 시간이 없었다. 여기서 못 만들면 죽는다는 심정이었다. 엉엉 울면서 같이 가는 지인에게 SOS를 쳤다. 지인이 도와줬다. 사실 나는 저주받은 손의 소유자라서 장르 팔 때도 폼켓팅 같은 거 성공해본 전적이 없었고 뽑기를 하면 4등 위로 나온 적이 드물고 하여간 전적이 많다. 나의 전적을 알기 때문에 더 긴장했다. 실질적인 경쟁률이 어떨진 모르겠지만 일단 내게는 나처럼 대기 타는 사람이 오천만 명쯤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농담이 아니라 ㄹㅇ로).
게다가 그날 낮에 멋진 일이 벌어졌다. 원래 월요일로 예정해놨는데 올라온 폼을 보니 월요일이 휴무일이란다. 혼자 비명 질렀다. 결국 수요일로 타협 보고 기차표까지 전부 취소하고 새로 예매했다(ㅋㅋ). 사실 월요일은 아무래도 날짜 특성 때문에 사람들이 덜 잡겠지, 하는… 어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수요일이 되니 진짜 자신이 없어졌다. 수요일이라고? 수요일 그거 주4일제에서 쉬기 가장 좋은 날에 선정된 날이잖아… 수요일 쉬면 뭔가 일주일이 확 단축된 것 같고 그렇잖아… 너 수요일에 쉬어? 이러면 모두의 부러움과 어쩌구를 살 수 있는 날짜 아니던가… 그런 날에… 그런 날에 도전한다고? 내가?

안 하면 어칼 건데 이미 기차 예약했는데
얼마나 간절했냐면 네이버 서버 시간을 띄워두고 폼켓팅 시작 전에 게임도 꺼놨다. 무거운 프로그램 전부 끄고 물 떠놓고 싹싹 빌었다. 그리고 싹싹 빈 그 물은 모조리 내 배로 들어갔다. 목이 타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내 컴퓨터 화면은 이 꼴이었다.

한 시간 전부터 저러고 있었다면 내 간절함이 이해가 될까… 창을 줄여놓은 다음에 아래처럼 필요한 정보를 메모장에 각각 적어놨다. 혹시 마계공방 도전할 거라면 저거 해두는 거 추천한다. 첫 번째 거는 미리 복사해두고 열리자마자 복붙 복붙 복붙 하면 좀 편하다.
긴장이 가시질 않아서 앤오랑 40분 정도 썰을 풀었다. 긴장이 좀 풀렸나 싶다가도 시간이 가까워오자 진짜 미칠 것 같아졌다. 너무너무 간절했다. 수요일에 못 만들면 금요일에 만든다 이것도 안 됐다. 말했다시피 일요일이 일주년이라서 택배를 부칠 거면 금요일에 부쳐야 했다. 그래야 앤오가 일요일에 택배를 깔 수 있으니까. 정말 간절했다. 정말로…
그렇게 00시가 되는 순간.
아직도 기억한다. 폼을 00시 00분 12초에 넣었다. 넣고 나서 의자에 죽어 있었다.
너무 긴장됐다. 진짜 너무 긴장됐다. 에이 12초면 뭐ㅋㅋ 하고 넘겼는데 또 00시 00분 00초에 마감됐다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되짚으면서 이를 딱딱딱 떨었다. 중간에 한번 트위터 들어갔는데 아무것도 와있지가 않아서 반쯤 포기했다. 그때 미쳐서 쓴 일기에 온통 마계공방 얘기밖에 없었다.

보통 이렇게 간절하면 안되더라 인생이 그랬더 보물고도 해탈해야 잘 열리고 그랬어… 피 눈물 흘리는 심정으로 썼다. 저거 쓰고 들어가서 진짜로 마주하러 갔다.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 아닌가. 디엠의 1 표시가…
그날 새벽이라서 망정이지 낮이었으면 비명 지르고 네 발로 기어다녔을 듯
전
성공했으니 끝…은 아니다. 미리 준비해갈 게 몇 개 있었다. 그런데 이게 진짜… 진짜 까다로웠다.우선 말하지만 나는 향에 둔감…하다. 아마도. 살면서 후각 때문에 힘들었던 일은 드무니까 아마도 둔감할 것이다. 향이 있는 제품들을 자주 사용하지도 않았고… 사실 향수도 내 돈 주고 사본 건 친구 선물밖에 없다. 하다못해 전 장르에서 향수 나왔을 때도 따로 안 샀다(그건 가격이랑 크기 이것저것 고려한 결과였지만서도). 있으면 나갈 때 틈틈이 뿌리긴 하는데 애당초 내가 잘 안 나가기도ㅋㅋ… 해서.
이렇게 구구절절 말하는 이유. 자캐한테서 무슨 냄새가 날지 물리적으로 상상이 가느냐. 난 안 갔다. 이미지와 생활 습관에서 따온 이런 느낌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섞이면 어떤 느낌일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했다. 그래서 준비 과정에서 매 순간 이 상태였음.

3시간 동안 머리 쥐어짜내서 쓴 거: 시원한… 물… 겨울 냄새(근데 나중에 안내문 읽어보니 이렇게 쓰면 안 된대서 울면서 지움)… 탄내… 잉크 냄새? 비누 냄새.
진짜 저게 다였다. 가벼움 무거움… 솔직히 모른다… 맡아봐야 알지 가벼운 냄새 무거운 냄새라는 게 존재해도 되는 거야? 입자에 무게가 생기는 거야? 과학은 중딩 때 포기한 나머지 이젠 내가 뭔 소리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있다가 포기하고 게임이나 마저 했다. 그리고 이날 밤부터 수요일까지 매일매일 향수 D-2, 향수 D-1 향수 D-day 상태로 살았다.
아… 그냥 너무 좋았어요
그날 일찍 만나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샤브샤브였다. 사진은 없음. 찍고 싶었는데 샤브샤브 같은 국물 요리에 하얀 인형을 꺼내둘 수가 없어서(심지어 나는 매운 탕이라 빨간색이었음) 안 찍었다… 죽까지 조지고 나와서 카페에 가려다가 중간에 아트박스로 빠졌다. 그런데 거기서 너무 귀여운 키링이 있어서… 키링도 사고…

(이건 그냥 인형 자랑)
아무튼 좀 쉬다가 갔다.
지하로 내려왔더니 아무도 안 계셔서 트위터 디엠으로 좀 일찍 왔다고 했다. 일찍 온 이유는 별것 없고 후기들에서 그렇게 하면 좋다길래… 먼저 쓸 게 좀 있었는데 확실히 십분 이십분 정도 일찍 가면 좋을 것 같기는 하더라. 우리는 30분 정도 빨리 갔는데 그렇게까지 일찍 갈 필요는? 없었던 것 같음. 강아지가 있었다. 나가기 전에 허락 맡고 쓰다듬었는데 진짜 너무 귀엽고 복슬복슬했다…
아무튼. 여기서부터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다.
생각해온 걸 쭉 쓰고(사실 별 쓸모는 없었던 것 같음 거의 새로 썼기 때문에…) 외관을 보여드렸다. 보여드린 외관은 이거임.

(숌털님 cm)
내가 상상했던 건… 예민하고 날카로운… 어딘가 서늘한… 그리고 신경질적인 영웅의 대외적인 이미지.였고 그 예민함에 제일 잘 어울리는 외관인 것 같아서 얘를 선택했다(노출 있는 거 괜찮으시냐고 미리 여쭤보았읍니다). 이거 딱 보시더니 뭔가 서걱서걱 적으시고는 갑자기 음… 하고 어마무시한 필리버스트가 시작되었다. MBTI 기준으로 줄줄줄 푸시는데 진짜 너무. 너무 신기했다 어떻게? 이게? 됨?
이때 주옥 같은 이야기들:
제일 먼저 보시더니 "이불에서 안 나가고." 이거라서 진짜 깔깔마녀됨 쉬는 날에 18시간씩 자는 애라서
"예민하고. 기본 인상 ㅍㅍ고. 꽃 꽂아줘도 ㅍㅍ 표정으로 달고 다니고."

ㅠㅠ
"좋아하는 거랑 싫어하는 거랑 확실해서 감흥도 크게 나뉘고." 이런 것까지 줄줄 말씀하셨다… 어떻게 하신 건지 진짜 신기함
또 웃겼던 거. 세계관 알려달라고 하시길래 아 이거 게임인데…까지만 말했는데 파판? 이러심ㅠ 종족까지 미코테? 이러셔서 아뇨 비에라요… 이러는데 진짜 쪽팔림 반 신기함 반이었다 파판 자캐로 만들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이러면서 온갖 이야기하면서 기다리다가 한번 딱 맡아봤는데… 뒤에서 본인 캐릭터가 안녕하세요. 하고 간다던 그거. 농담인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것 같지가 않았음 완성본 한번 슥 맡았을 때 자캐가 뒤에서 내 논문을 한번 힐끔 보고 그것도 과제라고… 하고 나를 한숨으로 매도하고 떠난 것 같은 어떤 불쾌함이 찾아왔다… 뭔데… 왜 한심해하는 건데…

그때 나오자마자 남긴 후기도 이따구다. 이때 공방 다녀오고 나서 교보문고에서 책 사고 뺑이치느라 힘들어 죽을 것 같았는데 향수 다시 맡겠다고 꾸역꾸역 카페까지 가서 앉았음.
근데 이게 신기한 게… 분명 처음 향기에서는 교수님이 나를 경멸하고 간 것 같은… 오너라서 기분 나쁜 어떤 느낌이 있었는데… 맡으면 맡을수록 왜 따뜻해지는 거지? 싶은 거임. 처음엔 냉철한 교수님 이미지에서 맡으면 맡을수록… 무언가가… 떠오르는데…까지 했다가 깨달았다. 아. 이거 살 냄새다. 진짜 살 냄새였다 아이스티 마시면서 깨달았다 나는 내 자캐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제발…)
구라 같았다… 내가 김모노 살 냄새를 뿌리고 다녀야 한다니… (하지만 현타와는 별개로 향은 제법 취향이었음 자캐 향수라는 거 빼고 그냥 시중에서 봤으면 샀을 듯)
결
처음 뿌리면 냉철하고 예민한 교수님이 슬쩍. 스쳐갔다가 이후부터는 그냥 막 자다 일어나서 배 벅벅 긁으면서 남편한테 밥 줘. 하는 이미지다(앤오 후기 발췌. 나도 동의함). 아… 근데 진짜 알고 싶지 않았던 살 냄새를 알게 된 것 같아서… 얘한테서 날 것 같은 향을 테마 삼긴 했는데 ㄹㅇ로 살 냄새가… 이렇게… 이렇게까지 ㄹㅇ 같은 살 냄새가 날 줄은… 진짜 몰랐어서… 아… 마음이 좀 심란함…시간이 좀 남아서 먼저 택배를 보내 드렸는데 앤오가 미리 까서 맡았다(ㅋㅋ). 부러워서 나중에 기회 되면 남편 향수도 만들어 달랬더니 향 노트 정리한 거 발췌해주더라. 만들었댄다. 둘이 같이 뿌리니까 진짜 좋대서 너무… 너무 기대가 된다…

(향수 단독샷이 없어서 앤오 사진 쌔벼옴. 회지는 무시하시길…)
아무튼 여러분… 마계공방 가보세요… 그리고 가실 거라면 스몰토크 옵션 체크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진짜 재밌었고 오만 얘기 다 들었어요(positive). 공방주님 입담이 진짜 진짜심. 너무너무 재밌었다… 본인 자캐/앤캐의 살 냄새가 궁금하시다면 마계공방. 강추합니다. 단: 진짜 남의 목덜미에 코 박은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나서 약간 현타 올 수 있음.
마계공방 링크 남기고 떠납니다.
여러분. 마계공방 하세요. 너무 즐겁고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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