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의 알맹이 포스터

날것의 알맹이

우리가 마주할 기적은 무한하기에 후기
★★★☆☆
관람일 2026-04-26
국가 한국
장르 SF
감독 이하진

리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취향은 아니었다.


대체로 취향이 까다로운 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뭐랄까 근래 젊은 작가들 위주로 돌아가는 SF 문학(김초엽, 천선란 작가로 대표되는 바로 그 분야)과는 취향이 살짝 상충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은 많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을 보았을 때는 아 나 이거 읽으면 또 악플(비유임 ㄹㅇ로 악플달진 않습니다) 뚱뚱하게 달겠구나 싶었는데, 그걸 감안한다면 생각보다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가 굉장히 확고하다는 인상을 끊임없이 받았다. 진짜 너무 확고하고, 또 답답함이나 울분이 많이 쌓여 있는 것 같았다. 부조리함을 잘 못 참으시거나, 쌓인 감정을 분출하기 위한 통로로 문학을 사용하는 것 같다는 게 내 주된 평가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그냥 취향이 안 맞는다. 취향이.


나는 해석의 여지가 많은 글을 좋아한다.

이전에도 말한 적 있었지만, "별것 아닌 현상"이 서사의 흐름을 따라 차곡차곡 몸집을 부풀리다가 결국 의미를 가지게 되는 그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너무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친절한 글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작가가 툭 던진 글을 읽으면서 독자적인 해석을 전개하는 편이 조금 더 내 취향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마주할 기적은~>은 조금 많이 아쉬웠다. 주제 의식을 수면 위로 드러내다 못해 너희 미쳤니? 수준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 주제 의식을 표출하는 방식이 아쉬웠던 거지, 주제 의식과 나의 의견이 상충한다는 건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그걸 일단 서사로 포장해야 하지 않은가? 소설의 탈을 썼으니까. 그 부분이 아쉬웠다. 그러니까, 어떤 느낌이냐면, 본인 상황이 너무 절박해서 물건을 팝니다 하길래 샀는데, 막상 내가 받은 게 택배 상자가 아니라 비닐봉지에 대충 싸맨 물건이었을 때 받는 당혹스러움이랄까. 그러니까 선생님, 절박함은 이해하지만 포장은 제대로 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택배 상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종이 뽁뽁이 정도는 둘러주셨어도 괜찮지 않았을까요? 라는 물음이 나오는, 그런 느낌.


적나라함이 지나치다. 해석의 여지 없이 상하좌우 꽉꽉 틀어막힌 글이다. 사실 나는 이게 소설이라기보다는 그냥 현실 고발 에세이 같다고 더 크게 느꼈다. 작가가 정한 기본적인 설정값들 이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다. 캐릭터들은 말 그대로 "작가가 정한 주제 의식을 한 치도 틀림 없이 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느껴진다. 주제 의식이 확고하더라도 그걸 세련되게 포장했다면 모를까, 그 겉포장을 하나하나 까보면서 알맹이를 음미하는 걸 좋아하는 입장인 나는 많이 아쉬웠다.


그렇지만 기대를 아예 안 했어서 그런가? 또 생각보다는 가볍게 읽기 괜찮은 것 같다. 현 시대를 굉장하게 비추고 있기도 하고. 젊은 작가 SF를 적당히 입문했는데 조금 더 현실과 맞닿은 이야기를 명확하게 보고 싶다면… 한 번쯤은 추천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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