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리뷰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그건 확실하다.
칠흑의 반역자는 오타쿠라면 싫어하기 힘든 확장팩이라고들 알고 있었어서 처음 밀 때도, 두 번째 밀 때도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런데 그 기대를 정말 완벽하게 충족해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를 반긴다… 칠흑은 진짜 어떻게 만든 거냐? 이상하다 너네 파판14팀 아니지 잠깐 접신했던 거지(미안)
스토리적으로 좋았던 부분. 낭비되는 캐릭터들이 없다. 특히 NPC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게 확 느껴진다. 다른 확장팩들보다도 칠흑이 NPC들 사용에 조금 더 세심한 편인데, 모브가 아닌 조연 수준이 된다면 스토리에서 다들 무언가를 해낸다. 빛의 전사가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제 발로 뚜벅뚜벅 나아간다. 당장 생각나는 NPC만 하더라도 차이 부부, 카이 시르, 붓을 주었던 화가, 조선소 사람들, 기타 등등… 허투루 쓰이는 캐릭터가 하나 없다. 한번 등장한 이상 정말 골수까지 빨아먹겠다는 의지까지 엿보일 정도로 철저하게 짜여 있었다.
두 번째로는 새벽의 혈맹 캐릭터성. 이건 아마 다들 공감할 이야기일 텐데, 새벽의 혈맹 일원들이 칠흑에 와서 캐릭터성이 확 살아났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P)… 여기서 살아난 캐릭터성이 효월과 황금까지 쭉 이어지는 걸 보다 보면 감회가 새롭고 기분이 짜릿하고 가슴이 벅차오르고 그런다. 그래 얘들아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수혜자는 에메트셀크(하데스)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사람들마다 호불호가 조금씩 갈리던데, 나는 극호. 자세한 건 이후에 첨언하겠다.
세 번째는 연출. 카메라워크와 음악 연출에 본격적으로 힘을 주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느껴질 만큼 홍련에 비해 연출력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갔다. 나는 진짜 칠흑 만들 때 제작진들 사이에서 무슨…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진심으로 궁금함… 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길래? 홍련 다음에 이런 대작을 만들지? (홍련을 싫어하지는 않아요… 안티까지는 아닙니다 그냥 순수하게 재미가 없었습니다 저는) 무조건적으로 칠흑 올려치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내 눈에는 완성도가 정말 훌륭했고, 그 완성도에는 훌륭한 연출이 빠질 수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출 중 하나는 이거.




어둠과 빛의 대결이었잖냐고 완전히… 새벽의 혈맹 일원이 흑백으로 변하면서 어둠에 잠식되는 와중에… 꽂히는 한 줄기 빛… 어둠에 사로잡혔다가도 그 어둠을 기어코 뚫어내는 한 줄기 빛 이 연출을 보고서 대체 어떻게 가슴이 벅차지 않을 수 있느뇨… 적어도 나는 모른다 나는 과몰입 인간이라서(하!)
칠흑은 결국 집에 가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에메트셀크는 뭐 말할 것도 없고(미련 뚝뚝 넘치는 영감은 그렇게 해저에 가짜 집을 만드는 지경에 이르고…) 1세계 사람들은 세상이 망해가는 탓에 본인의 거처를 최소한 한번씩은 잃었다. 비록 새로운 곳에 정착했다 하더라도 하늘을 뒤덮은 빛이 있는 한 그들은 영원히 도망자였을 테다. 에메트셀크의 말을 빌리자면, 빛 아래서 그들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죄"였다. 그래서 죄식자였던 거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죄라면, 산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고, 그 죄인을 잡아먹는 것이 죄식자니까. 그리고 죄인이 있는 곳은 감옥이지 집이 아니다. 빛 범람에 뒤덮인 1세계는 말하자면 감옥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둠의 전사 일행은 모험을 거듭하며 에메트셀크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살아 있는 것은 죄가 아니다." 테슬린 에피소드에서 그게 제일 명확하게 수면 위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는 것들 중에서 가치 없는 건 없어." 결국 두 이야기는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살아도 된다고. 당신은 가치가 있고, 당신의 삶은 죄가 아니니, 살라고.
그런데 기 위해선 의식주가 필요하다. 먹고 입을 것은 대체로 자력으로 해결 가능하다. 그러나 사는 곳은 불가능하다. 지금 그들을 위협하는 건 특정한 공간이 아닌 세계 그 자체니까.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람들은 제각기 맞서 싸운다. 이 부분이 좋았다. 빛의 전사(어둠의 전사라고 해야 하나?) 일행만이 싸우는 것이 아니다. NPC들은, 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제각기 살아남기 위해, 살기 위해, 희망이 이어지는 세계를 되찾기 위해 투쟁한다. 강력한 영웅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대신 자력으로 자신들이 있을 곳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우리의 적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아씨엔 에메트셀크. 만이천 년의 집을 그리워하는 존재.
선역과 악역이 명확히 나뉜 이야기다. 하지만 동시에, 신념과 신념이 맞부딪히는 서사이기도 하다. 에메트셀크는 우리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판단한다. 결론은 항상 같다. 우리에게는 살 자격이 없다는 것. 우리가 살아남고자 하는 그 자체가 죄라는 것.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진짜"를 보았으니까. 에메트셀크 입장에서 우리는 기껏해야 개미인 거다. 어린애가 아무 가책 없이 개미를 손으로 뭉개는 것과 사람이 죽는 것, 에메트셀크에게 이 두 가지에는 큰 차이가 없다.
누구는 에메트셀크를 소위 말하는 "세탁"해서 싫다고도 한다.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어떤 입장에서 본다면 에메트셀크한테도 사정이 있었어~ 사정이 있어서 그랬어~ 하며 그가 저지른 죄를 가볍게 만드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해와는 별개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에메트셀크는 결국 캐릭터다. 악역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건 현실에서의 이야기다. 서사 없는 캐릭터는 존재할 수 없고, 만일 존재하더라도 지나치게 일차원적이게 된다. 매력적인 악역은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든다. 작법의 가장 기초 중 하나다. 이런 면에서 에메트셀크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히 실행했다. 그는 입체적이고 다면적이며, 자신만의 굽힐 수 없는 신념이 있고, 그랬기에 빛의 전사 일행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칠흑은 선역이 악역을 처벌하는 이야기보다는 신념을 가진 두 존재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서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존재들, 그러나 집을 공유할 수는 없는 존재들의 싸움이었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동시에, 그리움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되찾기 위해 행동하는 이야기였다고. 그런 의미에서 수정공은 모든 NPC를 대표하는 존재라는 상징성이 크지 않을까 한다… 그야말로 과거에서 온, 그리움에서 멈추지 않고 미래를 쟁취하기 위해 다다른 사람이니까.
좋다… 진짜 좋다. 진짜 너무 좋았다… 에메트셀크는 끝까지 자신은 현 인류와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으면서 현 인류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맡겼다는 것, 현 인류에게 분명히 영향을 받은 구석이 있었다는 것… 그는 뛰어난 악역임과 동시에 자신의 신념을 관철한 존재였다는 것… 그러나 동시에 동포를 그리워한 하나의 사람이기도 했다는 것… 그리고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것… 에메트셀크와 우리(=빛의 전사 일행)는 결국 같은 것을 지키려 했다는 것… 아 그냥 너무 좋다 미친
원 브링즈 셰도우 원 브링즈 라이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