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10년이라는 것 포스터

고작 10년이라는 것

장송의 프리렌
★★★★★
관람일 2025-12-27
국가 일본
장르 애니메이션
감독 야마다 카네히토(원작) , 사이토 케이이치로 (애니메이션)
출연 -

리뷰

잠도 안 오고 할 일도 딱히 없어서 쓴다. 장송의 프리렌 후기.


우선 나는 원작을 안 봤다(!). 원작도 물론 좋다지만 애니메이션이 진심 진국으로 뽑혀서… 뭔가 이 감상을 해치고 싶지 않은 느낌? 잘 만들었기 때문에 원작이 기대되는 매체가 있는가 하면 너무 잘 만들었기 때문에 원작을 보고 싶지 않게 되는 매체도 있는 것 같음. 나 같은 경우 프리렌은 후자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디에 결격 사유가 있는 건 결코 아니고.


그냥… 굉장히 과감한 스토리라고 생각했음. 고작 10년. 보통 마왕을 처치하기 위한 용사 파티의 여정을 담는 것이 전형적인 정통 판타지인데, 프리렌은 아주 약간의 발상의 전환을 주었다. 시작하자마자 용사 파티는 왕국으로 돌아온다. 마왕을 처치했기 때문에. 시작부터 어느 세월과의 이별을 고하는 이 작품은 주인공이 영겁에 가까운 세월을 하는 엘프이기에 한때의 작별을 또 다른 시작으로써 사용할 수 있다.


고작 10년… 사실 이 말에 공감하기도 하고 영 모르겠기도 하다. 인간인 내게 십 년은 정말…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결코 적은 세월은 아니니까. 하지만 주인공인 프리렌에게는 아니다. 그에게 십 년은 고작 눈 깜빡할 새에 지나는 시간이다. 정말로 고작 십 년인 것이다. 용사 파티 일원 모두가 십 년 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주고받을 때, 프리렌은 고작 십 년이었는데 뭘, 하는 건조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 고작 십 년은 사람을 바꾼다. 힘멜이 죽었을 때 프리렌은 눈물을 흘린다. 고작 십 년. 인간이 짧은 삶을 산다는 걸 알았는데 왜 더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라는 후회 어린 말을 하면서.


죽은 존재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결국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죽음이라는 건 역행이 불가능한 돌진이다. 걷잡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 사람은 지나치게 급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순간에 죽는다. 비단 사람뿐이 아닌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다. 죽음은 가장 궁극적이고 완전한 형태의 단절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체험해야만 알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죽음은 개중 가장 대표적인 하나인 것 같다.


단절이라는 게 이렇게 사무치는지 겪어보기 전까진 몰랐다. 후회가 남지 않으려면 정말로 힘내야겠구나 싶었다. 동시에 그런 마음도 드는 것이다. 후회가 안 남는 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프리렌이 애니메이션 속에서 그 대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사실 본편을 전부 애니화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만 접한 입장에서는 더더욱 알 수 없다). 단지 프리렌은, 우악스럽게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눈앞에 들이미는 대신, 잔잔한 작화와 잘 맞아 떨어지는 음악, 그 행간과 여백 사이사이에 메시지를 보물찾기하듯 숨겨둔다. 죽음이라는 건 필연적인 것. 결국 모두 우리를 떠나고 우리 또한 모두를 떠나게 된다. 후회를 최대한 덜 수 있도록 우리는 서로를 필사적으로 알아가야만 한다고.


죽음이라는 외로움에 굉장히 집중한 내용이다. 애니메이션의 초중반부는 더더욱 그렇다(보통 1쿨이라고 부르는 부분). 이전에는 정말 별 생각 없이 보았는데, 지인분의 타계 이후 충동적으로 다시 켰을 때는 1화와 2화를 보면서 거의 통곡하다시피 했다. 눈물을 참을 수가 없더라… 평점에서 4.5점까지는 객관적인 시점이지만 5점은 마음이 공명해야 나오는 점수이므로 주관적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내게 장송의 프리렌만큼 5점이라는 평점이 어울리는 창작물은 드물 듯하다.


게다가 프리렌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좋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생각과 사유가 자유로운, 느슨하고 여지 많은 창작물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렌은 내 이데아 같은 존재였다.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프리렌의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는 회차였다. 늘그막 드워프인 폴 영감과 프리렌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밥 먹으면서 보고 있었는데, 그때 불현듯 깨닫게 되더라. 내가 왜 장송의 프리렌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는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도 거기서 나온다.

그렇군. 드디어 마왕을 잡으러 가는구나. 평화로운 시대가 오면 좋겠군.

보면서 깨달았다. 이전에 혼잣말처럼 쓴 적도 있지만… 또 기록을 남긴다. 나는 맥락에서 오는 묵직한 감정과 그것을 정확히 은유한 창작물이 좋다. 맥락이 거세된 사회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당장 유행하는 챌린지나 숏폼만 보아도 특정 부분만 잘린 채 돌아다니거나, 애당초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내용이 욱여넣어져 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앞뒤 맥락이 맞는 이야기에서 나오는 촘촘한 여백과 창작자가 그 여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 은유적/간접적으로 드러나는 대사 등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이것이 아마 내가 프리렌을 한층 더 사랑하게 된 계기가 아닐까 한다. 장송의 프리렌은 스토리 내내 끝없이 여지를 주고, 여백을 드러내지만, 그것이 단순한 실수라거나 공백이 아니라 창작자의 의도라는 것을 명확히 한다. 그리고 필요한 때가 온다면 거침없이 그 여백을 수면 위로 끌어냄으로써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물론 프리렌도 완벽하지는 않다. 한번 트위터에서 플로우가 돌았던, "인간을 모사하는 죽여야만 하는 존재"라는 설정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나도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뭐랄까… 완벽한 창작물은 없고 그렇다고 장송의 프리렌이 일부의 설정이 창작물 자체의 메시지를 훼손하는 작품은 아닌 것 같다(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시선). 게다가 앞서 말했듯 나는 장송의 프리렌이 주는 잔잔한 분위기와 촘촘한 맥락에 의한 스토리, 그리고 주제에 몹시 탄복했기 때문에… 어지간한 병크가 터지지 않는 이상 남들한테 당당히 추천하고 다닐 것 같다.


이별을 겪은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번에 1월 16일 즈음 2기가 나온다고 한다. 10화뿐이라는 게 너무 섭섭하지만… 1기 때의 퀄리티를 그대로 유지해서 들어와주었으면 좋겠다. 2기를 보고 난 후에도 후기를 적어야지. 여러분도 기회가 되면 한번쯤 봐주셨으면 한다… (커비한테 워낙 졸랐더니 같이 1화 봐줬음…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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