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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영화
    2025-12-31

    성부와 성좌와 성령의 이름으로

    콘클라베
    4
    관람일 2025-12-31
    장르 영화
    감독 에드바르트 베르거
    출연 레이프 파인스 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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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치만좋앗음

  • 5
    애니메이션
    2025-12-27

    고작 10년이라는 것

    장송의 프리렌
    5
    관람일 2025-12-27
    국가 일본
    장르 애니메이션
    감독 야마다 카네히토(원작) , 사이토 케이이치로 (애니메이션)
    출연 -

    리뷰

    잠도 안 오고 할 일도 딱히 없어서 쓴다. 장송의 프리렌 후기.


    우선 나는 원작을 안 봤다(!). 원작도 물론 좋다지만 애니메이션이 진심 진국으로 뽑혀서… 뭔가 이 감상을 해치고 싶지 않은 느낌? 잘 만들었기 때문에 원작이 기대되는 매체가 있는가 하면 너무 잘 만들었기 때문에 원작을 보고 싶지 않게 되는 매체도 있는 것 같음. 나 같은 경우 프리렌은 후자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디에 결격 사유가 있는 건 결코 아니고.


    그냥… 굉장히 과감한 스토리라고 생각했음. 고작 10년. 보통 마왕을 처치하기 위한 용사 파티의 여정을 담는 것이 전형적인 정통 판타지인데, 프리렌은 아주 약간의 발상의 전환을 주었다. 시작하자마자 용사 파티는 왕국으로 돌아온다. 마왕을 처치했기 때문에. 시작부터 어느 세월과의 이별을 고하는 이 작품은 주인공이 영겁에 가까운 세월을 하는 엘프이기에 한때의 작별을 또 다른 시작으로써 사용할 수 있다.


    고작 10년… 사실 이 말에 공감하기도 하고 영 모르겠기도 하다. 인간인 내게 십 년은 정말…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결코 적은 세월은 아니니까. 하지만 주인공인 프리렌에게는 아니다. 그에게 십 년은 고작 눈 깜빡할 새에 지나는 시간이다. 정말로 고작 십 년인 것이다. 용사 파티 일원 모두가 십 년 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주고받을 때, 프리렌은 고작 십 년이었는데 뭘, 하는 건조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 고작 십 년은 사람을 바꾼다. 힘멜이 죽었을 때 프리렌은 눈물을 흘린다. 고작 십 년. 인간이 짧은 삶을 산다는 걸 알았는데 왜 더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라는 후회 어린 말을 하면서.


    죽은 존재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결국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죽음이라는 건 역행이 불가능한 돌진이다. 걷잡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 사람은 지나치게 급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순간에 죽는다. 비단 사람뿐이 아닌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다. 죽음은 가장 궁극적이고 완전한 형태의 단절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체험해야만 알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죽음은 개중 가장 대표적인 하나인 것 같다.


    단절이라는 게 이렇게 사무치는지 겪어보기 전까진 몰랐다. 후회가 남지 않으려면 정말로 힘내야겠구나 싶었다. 동시에 그런 마음도 드는 것이다. 후회가 안 남는 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프리렌이 애니메이션 속에서 그 대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사실 본편을 전부 애니화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만 접한 입장에서는 더더욱 알 수 없다). 단지 프리렌은, 우악스럽게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눈앞에 들이미는 대신, 잔잔한 작화와 잘 맞아 떨어지는 음악, 그 행간과 여백 사이사이에 메시지를 보물찾기하듯 숨겨둔다. 죽음이라는 건 필연적인 것. 결국 모두 우리를 떠나고 우리 또한 모두를 떠나게 된다. 후회를 최대한 덜 수 있도록 우리는 서로를 필사적으로 알아가야만 한다고.


    죽음이라는 외로움에 굉장히 집중한 내용이다. 애니메이션의 초중반부는 더더욱 그렇다(보통 1쿨이라고 부르는 부분). 이전에는 정말 별 생각 없이 보았는데, 지인분의 타계 이후 충동적으로 다시 켰을 때는 1화와 2화를 보면서 거의 통곡하다시피 했다. 눈물을 참을 수가 없더라… 평점에서 4.5점까지는 객관적인 시점이지만 5점은 마음이 공명해야 나오는 점수이므로 주관적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내게 장송의 프리렌만큼 5점이라는 평점이 어울리는 창작물은 드물 듯하다.


    게다가 프리렌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좋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생각과 사유가 자유로운, 느슨하고 여지 많은 창작물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렌은 내 이데아 같은 존재였다.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프리렌의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는 회차였다. 늘그막 드워프인 폴 영감과 프리렌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밥 먹으면서 보고 있었는데, 그때 불현듯 깨닫게 되더라. 내가 왜 장송의 프리렌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는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도 거기서 나온다.

    그렇군. 드디어 마왕을 잡으러 가는구나. 평화로운 시대가 오면 좋겠군.

    보면서 깨달았다. 이전에 혼잣말처럼 쓴 적도 있지만… 또 기록을 남긴다. 나는 맥락에서 오는 묵직한 감정과 그것을 정확히 은유한 창작물이 좋다. 맥락이 거세된 사회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당장 유행하는 챌린지나 숏폼만 보아도 특정 부분만 잘린 채 돌아다니거나, 애당초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내용이 욱여넣어져 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앞뒤 맥락이 맞는 이야기에서 나오는 촘촘한 여백과 창작자가 그 여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 은유적/간접적으로 드러나는 대사 등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이것이 아마 내가 프리렌을 한층 더 사랑하게 된 계기가 아닐까 한다. 장송의 프리렌은 스토리 내내 끝없이 여지를 주고, 여백을 드러내지만, 그것이 단순한 실수라거나 공백이 아니라 창작자의 의도라는 것을 명확히 한다. 그리고 필요한 때가 온다면 거침없이 그 여백을 수면 위로 끌어냄으로써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물론 프리렌도 완벽하지는 않다. 한번 트위터에서 플로우가 돌았던, "인간을 모사하는 죽여야만 하는 존재"라는 설정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나도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뭐랄까… 완벽한 창작물은 없고 그렇다고 장송의 프리렌이 일부의 설정이 창작물 자체의 메시지를 훼손하는 작품은 아닌 것 같다(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시선). 게다가 앞서 말했듯 나는 장송의 프리렌이 주는 잔잔한 분위기와 촘촘한 맥락에 의한 스토리, 그리고 주제에 몹시 탄복했기 때문에… 어지간한 병크가 터지지 않는 이상 남들한테 당당히 추천하고 다닐 것 같다.


    이별을 겪은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번에 1월 16일 즈음 2기가 나온다고 한다. 10화뿐이라는 게 너무 섭섭하지만… 1기 때의 퀄리티를 그대로 유지해서 들어와주었으면 좋겠다. 2기를 보고 난 후에도 후기를 적어야지. 여러분도 기회가 되면 한번쯤 봐주셨으면 한다… (커비한테 워낙 졸랐더니 같이 1화 봐줬음… 고마워요)

  • 4.5
    영화
    2025-12-28

    뒤돌아봐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4.5
    관람일 2025-12-28
    국가 프랑스
    장르 영화
    감독 셸린 시아마
    출연 아델 에넬, 노에미 메를랑 외

    리뷰

    개봉한 당시에 한창 좋아하던 영화였다. 그때 당시에 워낙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았어서 특히나 더 좋아했는데, 미장셴도 예쁘고 내용도 오래 생각하게 되어서 영화관에서 두세 번쯤 본 기억이 있다. 뭐 이것저것 말하기에는 시간도 늦었으니 간략하게만 말할 테지만… 다들 한번씩 봐주었으면 하는 영화다.

    일단 미장셴이 너무 좋다. 전체적으로 영화 자체의 색감이 약간 빛바랜 유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의도한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작중 주인공인 마리안이 유화를 다루는 화가라는 걸 생각한다면 정말 의도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고. 동시에 색감을 아주 잘 썼다는 건 등장인물들의 옷 색깔 등도 주의 깊게 봐야 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치밀하다.
    파랑과 빨강의 대조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커비의 후기를 구구절절 공감하면서 읽었는데. 요약하자면 영화 시작, 현재의 시점인 마리안은 우울함을 의미하는 파란 옷을 입고 있다. 그러나 영화 본편, 과거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그는 붉은 옷을 입는다. 반대로 아가씨인 엘로이즈는 과거 내내 푸른 옷을 입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초록 옷을 입는 비중이 늘어난다. 옷이 등장인물들의 심경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듯 섬세하게 설계된 장치는 비단 옷뿐이 아니다. 영화 내내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라는 기표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데, 개중 가장 대표적인 의미가 사랑일 성싶다. 여자들의 축제에서, 영화 중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배경 음악이 깔리던 순간, 엘로이즈의 치맛자락에 불이 붙는다. 이후 영화 속에서 엘로이즈는 그때를 콕 집어 키스하고 싶었던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불은 걷잡기 쉽지 않다. 사람이 두엇 달라붙어 불을 끄려 들었지만, 그 여파로 엘로이즈가 넘어진다. 걷잡기 힘든 사랑에 발목 잡힌 엘로이즈의 미래를 암시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동시에 마리안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그리게 될 만큼 강렬히 기억하는, 아마도 사랑을 자각한 순간이 아닐까 싶고.

    표면적으로 보기에도 굉장히 대담한 영화다. 하지만 그 내부를 뜯어 살펴보면, 더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외치고 있다. 다만 페미니즘적 메시지, 영화에서 다루는 여성상과 그들이 비판하는 남성성 권력과 가부장을 논하기엔… 지금은 새벽 다섯 시 이십사 분이고 나는 너무 지쳤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을 빼놓고 이 영화를 다룰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그래서 표면만 살짝 핥고 지나가야겠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를 재해석하는 것도 그렇고, 그림에는 관습과 이념이 있지만 생명력과 존재감은 없지 않냐고 비아냥거리던 것도 그렇고…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굉장히 도발적인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걸 처음 봤을 때보다는 온건한 관점을 지니게 된 나지만, 뭐랄까… 오랜만에 보니 상당히 강력한 메시지를 내재한 영화라고 느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건, 역시 제목을 차지한 "뒤돌아봐요."에 관한 이야기. 서술되지 않았던 에우리디케의 자율성을 끄집어냈다는 점에서 엘로이즈의 대담함이 엿보인다. 마리안은 오르페우스로, 에우리디케는 엘로이즈로 빗대어지는 이 영화 속에서, 어쩌면 엘로이즈의 마지막 말이었던 "뒤돌아봐요."는 마리안을 향한 엘로이즈 최후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기서 이별이라고. 떠날 때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끝은 내가 정하겠다고.
    어쩌면 그래서 나는 엘로이즈가 엔딩 장면에서 마리안을 보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나를 볼 때 나는 누구를 보겠어요?" 질문한 것은 엘로이즈다. 마리안은 공연 내내 엘로이즈를 바라보았다. 엘로이즈는 눈을 돌리지 않았고, 따라서 마리안은 "그녀는 날 보지 못했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보지 못했다는 건,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우스를 붙잡지 못했다는 건, 엘로이즈가 영화 중반에 "어쩌면 본인이 말했을지도 모르지. 뒤돌아봐요." 라고 말함으로써 제시했던 에우리디케의 자율성, 자유 의지를 위반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엘로이즈는 선택한 것이다. 바라보지 않기를. 벅차오르는 관현악기와 함께 점점 눈물을 흘리는 엘로이즈를 보며 속절없이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가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멋대로 생각해도 좋지만, 나를 비난하지는 말아요."
  • 4.5
    영화
    2025-12-27

    내게 너의 심장을 줘

    하울의 움직이는 성
    4.5
    관람일 2025-12-27
    국가 일본
    장르 영화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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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영화
    2025-12-25

    닿지 못할 곳으로

    천공의 섬 라퓨타
    4
    관람일 2025-12-25
    국가 일본
    장르 영화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

    리뷰

    영화뿐이 아니라 이 경험 자체가 너무 즐거웠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떠들면서 영화 보기라니! 너무 즐거웠어🥹 앞으로도 다른 영화들 많이 많이 봐야지. 같이. 커비 덕에 항상 즐겁다…


    천공의 섬 라퓨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수많은) 대표작 중 하나.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영화다(ㅋㅋ).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감독의 영화는 정말 대표적인 것, 이를테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만 보거나, 최신에 개봉한 작품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정도만 봤다. 개인적으로 챙겨본 건 최근의 마녀 배달부 키키랑, 예전부터 좋아했던 모노노케 히메, 이제는 기억이 잘 안 나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정도? 막상 본 건 나름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유명한 것만 몇몇 개 챙겨본 수준이라 어디 가서 말하기는 좀 부끄럽다.


    나의 짧은 식견으로도 알 수 있듯,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상당히 일관적이라고 생각한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그만 좀 싸우고 더불어 살아가라. 이러한 메시지에는 미야자키 감독의 성장 배경 같은 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겠지만, 거기까지 알아보는 건 차차 하고. 우선은 이 벅차는 마음부터 풀어놔야겠다.


    영화 내내 수많은 등장인물이 제각기 다른 이유로 천공의 섬인 라퓨타를 쫓는다. 라퓨타는 칠백 년 전 존재했다고 전해지는 하늘을 떠도는 섬. 창작물에서 옛 문명이 으레 그러하듯, 현대 문명으로는 쫓아갈 수 없는 기술의 집합지였다. 라퓨타도 마찬가지다. 캐릭터들은 라퓨타에 닿기를 원하고, 결국 후반부에 가서는 직접 닿는 데에 성공하기까지 한다.


    라퓨타는 하늘을 나는 존재, 즉 작중 하늘을 대표하는 존재다. 반대로 라퓨타를 쫓는 존재들, 즉 인간은 제 힘으로는 날 수 없는,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존재들이다. 즉 땅을 대표하는 것이다. 개중에서도 가장 깊은 땅, 광산 마을에서 와 땅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존재가 있다. 바로 파즈다. 반대로, 인간 중에서 라퓨타와 가장 가까운 존재는 시타다. 두 사람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쭉 나열한 것이 바로 이 영화다. 만난 지 고작 몇 시간, 기껏해야 며칠인 이들이다. 그들의 유대감은 기이할 정도로 짙다. 영화적 허용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라퓨타로 대표되는 하늘은 결국 이상이다. 현대 인류가 닿지 못한, 그래서 원하게 되는. 인류는 라퓨타에 닿기를 원하고, 그곳에 수많은 보물, 또는 세상을 호령할 힘이 있다고 믿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러나 인류는 본디 날 수 없다. 그들에게 날개는 허락되지 않았기에 철골과 천으로 이루어진 비행선에 몸을 의탁해야 한다. 인류는 자의로 땅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렇기에 그들은 이상과 반대된다. 즉 현실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기표와 가장 가까운 캐릭터인 시타와 파즈는 어떨까? 기표는 서로에게 달라붙어 영화 내내 영향을 끼친다. 캐릭터도 매한가지다. 라퓨타와 가까운 시타는 이상을, 땅과 가까운 캐릭터인 파즈는 결국 이상과 현실이라는 의미를 대표하게 된다.


    어쩌면 그래서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만난 지 고작 몇 시간, 기껏해야 며칠인 두 사람이 이상하리만치 쉽게 친해지고, 또 끈끈해진 것은. 이상과 현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우리는 자라는 내내 꿈을 꿔야 한다고 배우며, 또 실제로도 꿈을 꾼다. 우리는 매 순간 파즈이며, 또 동시에 매 순간 시타가 된다. 땅에 발을 디딘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그러며 소원을 바라는 순간, 우리 속에서는 파즈와 시타가 서로 손을 잡게 된다. 파즈와 시타가 동시에 우리를 대표한다고 가정한다면, 이 영화는 한층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무스카 또한 라퓨타 왕족인데, 그럼 무스카는 우리를 대표하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다. 이러한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두가 우리를 조각 내어 부풀린 것에 가깝다고. 이상을 바라는 존재, 현실적인 존재, 힘을 바라는 존재, 보물을 바라는 존재 등등. 그렇기에 비로소 라퓨타에서 일어난 비극이 더욱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대표하는 수많은 캐릭터가 제각기 이상을 향해 손 뻗다가 그른 선택을 내리고, 결국 몰락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 누군가는 추락했고, 누군가는 비행선을 잃었으며, 누구는 두 눈이 먼 채로 사라졌다. 다만 이 사건 속에서도 자신의 것을 조금이나마 쟁취한 캐릭터들이 있었는데, 이 캐릭터들은 선역이라고 묶을 수 있는, 즉 '타인을 도운' 존재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지나치게 이상을 쫓으며 타인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몰락일 뿐이다. 이상은 이상일 뿐이다. 만일 이상이 타인을 해치는 도구가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거리낌 없이 파괴해야 한다. 시타와 파즈가 그러했듯이. 맹목적으로 쫓던 이상을 놓아주고, 서로 힘을 합쳐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고. 망설이는 한이 있더라도 이상을 놓아주는 순간, 이상은 뜻하지 않은 순간 우리를 지탱해줄 것이라고. 라퓨타의 커다란 나무 뿌리가 추락하는 시타와 파즈를 구해주었듯이 말이다.


    어쩌면 이상은 이상에 불과할 때 가장 아름다울지 모른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나. 막상 꿈꾸던 것을 쟁취하고 보니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고. 천공의 섬 라퓨타도 결국 비슷한 말을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던 라퓨타의 정원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연주의는… 음.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유명하니까. 예쁘고 반짝이고 아름다운, 말 그대로 이상적인 정원이었던 그곳에서 인간의 발자취는 오래전 끊겼다. 칠백 년 만에 찾아온 인간들은 고요하던 라퓨타 성을 헤집고 훼손했다. 단적으로 보았을 때 이건 미야자키가 바라보는 인간의 탐욕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인간을 혐오하는 동시에 인간을 사랑하고, 그들을 불신하는 동시에 그들을 믿는다. 모순적이지만 모두가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돌이킬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설령 이전과 다른 형태로 변모한다고 하더라도.


    이것과 별개로 좋았던 건 역시 도라 할머니! 어떻게 이런 캐릭터를 만들었지 싶을 정도로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목표 의식이 뚜렷한 노년의 여성 캐릭터, 그런데 모험 활극의 주연이라니. 요즘에도 이런 세련된 캐릭터가 잘 안 나올 것 같은데. 게다가 새삼 좋았던 건, 내내 해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보물을 찾고자 했던 도라가 마지막에 라퓨타에서 훔쳐 온 보물을 꺼낼 때였다. 보물을 조금밖에 훔쳐오지 못했다고 말하는 그 장면에서, 어쩌면 시타와 파즈 또한 도라의 보물에 속하지 않을까 싶었다.


    라퓨타 속 캐릭터들은 미련없이 떠났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나는 아직 여기에 남아 있다.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였어. 이상이나 신념에 사로잡힌 인물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는 때때로 이상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포기하는 순간 뜻하지 않은 곳에서 놓아준 이상이 우리를 도와주리라는 것… 미야자키 하야오 나름의 위로와 인류를 향한 기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정말 좋았다. 오래오래 곱씹게 될 것만 같다.

  • 3.5
    영화
    2025-12-20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

    마녀 배달부 키키
    3.5
    관람일 2025-12-20
    국가 일본
    장르 영화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

    리뷰

    마녀 배달부 키키. 딱 한 번 봤다. 어제 새벽에. 잠이 안 와서. 지인 추천이었는데(고마워요), 정신 놓고 멍하니 볼 수 있을 만한 좋은 영화였다. 그런데 이후로 끊임없이 이 내용은 무엇을 함의하고 있고… 하는 생각들이 멈추지를 않는 바람에. 이럴 거면 좀 정돈해서 후기를 쓰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남긴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하는 게 좋을까. 흠… 일단, 개인적으로 나는 마녀 배달부 키키는 자아를 확립하는 시기의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게 설령 사춘기든, 낯선 타지, 타국에 나가 새로운 시도를 시작한 사람이든 간에. 어쩌면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사람, 또는 슬럼프가 온 사람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될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떠들기에 앞서, 나는 키키와 관련한 별도의 이야기를 찾아보지 않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 등을 포함해서. 그러니까 여기에 쓰는 건 어디까지나 내 뇌피셜이다.

    영화는 대체로 두 가지의 큰 틀로 분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적 존재와 외적 존재. 기본적으로 내적 존재란 키키라는 주인공과 키키가 가진 것 — 마법, 빗자루, 검은 고양이 지지 — 이다. 반대로 외적 존재란 아직은 키키의 것이 되지 못한 것 — 새로운 마을, 비행선, 톰보의 자전거 등 — 이다. 영화를 진행하는 내내 이 내적 존재와 외적 존재는 첨예하게 대립한다. 눈으로 보이는 갈등이 아니더라도, 매 순간마다 내적과 외적 존재의 충돌은 키키를 끊임없이 고뇌로 몰고 간다.

    돌이켜 보면 키키는 외적인 존재와 얽혔을 때, 특히 마을(도시라고 부르는 것이 조금 더 적확한 어휘일지도 모르겠다)과는 대부분 그다지 즐거운 결말을 보지 못했다. 도시에서 낮게 날다가 경찰에게 붙잡혔고, 갈 곳이 없어서 마을을 떠돌았다. 내가 특히나 집중한 부분은, 도시에서 키키가 혼자서 외적인 탈 것에 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전거, 히치하이킹한 자동차, 버스 등을 탔지만 모두 동승자가 있었다. 키키가 유일하게 홀로 타는 것은 내적 존재인 빗자루다.

    키키의 빗자루는 마녀로서의 아이덴티티의 일종이다. 마법과 비행 또한 그렇다. 지지도 마찬가지다. 내적인 존재들은 결국 나를 구성하던 자아 일부인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던 빗자루는 부서지고, 비행 마법은 쓸 수 없게 되며, 지지와는 더는 대화가 통하지 않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애당초 모험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즉 외적 존재와 엮이는 순간부터 일어난 하나의 사건인 셈이다.

    하지만 사건은 이미 일어났다. 고난은 벌어졌으므로 남은 건 순응하는 일뿐이다. 인제와서 돌아갈 수도 없고(애당초 날 수 없는데 어떻게 돌아간단 말이야?), 어머니와의 접점은 영화 내내 초반부를 제외하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온전한 나의 편처럼 느껴졌던 지지마저 외부 존재, 외적 존재 중 하나인 도시 고양이와의 연애에 눈이 팔리더니 말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상황. 이것이 키키가 맞닥뜨린 시련이다.

    이 시련을 넘어서는 건 결국 키키의 몫이다. 영화는 키키가 시련을 넘어서도록 조성한다. 비행선에 매달린 톰보가 바로 그 장치다. 시련을 맞닥뜨린 상태에서 키키는 톰보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을 안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내적 존재가 모두 흐려진 지금, 키키는 마녀라기보다는 도시 사람에 가깝다. 하지만 톰보를 구하기 위해서 그는 ‘날아야 한다’.

    그 상황에서 키키는 대걸레를 선택한다. 도시 사람, 즉 외적 존재가 들고 있던 외적 존재를 흡수하여 자신의 것, 내적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걸레를 타고, 잃어버렸던 비행 능력을 도로 쟁취해 내고, 그렇게 톰보를 구출하는 데에 성공하면서, 키키는 조금 더 뒤섞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내적 존재는 나다. 외적 존재는 현실이다. 나는 나로서만 존재할 수 없다. 어느 순간 우리는 현실에 뒤섞여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나를 잊게 된다. 말하자면 균형을 잡아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내적 존재로 무장했던, 자기 자신에 불과했던 키키가 도시에서 처음 맞닥뜨린 현실에 순간적으로 자신을 잃었다가 회복한 것처럼.

    낯선 환경에서 적응한다는 건 즉 본래의 나를 일부분 잃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환경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물론 잃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떨어져 나간 부분을 채우는 또 다른 존재/물질/기억 등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과거의 내가 가졌던 것과 일치하지 않으며, 동일하지도 않다.

    물론 다른 관점에서 보기에도 충분히 열려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본 관점도 수많은 해석 중 일부겠지… 그렇지만 자아 찾기 대장정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 같아서 참 좋았다. 응. 엄마의 빗자루를 받았던 초반과 스스로 대걸레를 선택한 키키의 대범함이 참 좋다.

    별개로 가장 인상 깊게 봤던 부분은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었다. 비행이라는 건 결국 키키의 자아를 표출하는 방법 중 하나였는데, 그걸 톰보를 포함한 친구들과 함께 즐기고 있었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정말로 어느 정도 둥지를 튼 느낌이랄까. 참고로 제목은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에서 따왔다.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쪽도 이쪽도 자아 확립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데미안을 언제 한번 다시 읽어보고 싶기도 하고.

    나중에… 한두 번 더 보고서 조금 더 정제된 후기를 쓰고 싶긴 하다. 책은 되짚을 수 있는데 영화는 그러기가 영 쉽지 않아서. 게다가 오늘은 상태도 막 메롱이다(ㅠ). 아무튼 좋았다는 마음을 간직이나마 하기 위해서 짧게 후기를 남긴다. 25일에는 커비랑 라퓨타 보는데 그것도 기회가 된다면 후기를 남기고 싶다.

    키키야 행복하거라

    나도 행복하마